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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천 시

세계최초 활판인쇄술 상업용 일간신문 민간 조보 발견

영천시민신문기자 2017. 4.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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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최초 활판인쇄술 상업용 일간신문 민간 조보 발견

                 조선 선조때 의정부 허가 받아 각 관청 판매




세계최초 활판인쇄술에 의한 상업용 일간신문인 민간조보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민간조보’의 내용과 일치되는 점이 많아 진위가 확인된다면 세계사적 발견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에서 지난 12일 영천시민신문에 최초로 공개한 민간조보는 서책의 표지로 사용되면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동안 사료 상으로 민간인쇄 조보가 매일 발행되었다는 기록은 있었으나 그 실체가 발견되지 않아 세계 최초의 활판인쇄 일간신문이라는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이는 세계최초 일간신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문이 1650년 독일에서 발간된 신문이며 민간인쇄조보는 이보다 73년 앞섰지만 실물이 없어 세계 공인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발견된 이 민간조보의 크기는 가로 40.2㎝, 세로 29㎝ 등으로 총 8장이다. 발행날짜는 1577년(선조 10년) 11월 초6일, 15일, 19일, 23일, 24일 5일치이다. 1개면은 11행으로 되어 있고 한행에 22자 내외가 들어가 있다.


박물관 측이 민간인쇄 조보로 추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먼저 선조실록의 기사와 이 조보의 내용이 일치하고 국내의 모든 논문의 내용과도 일치하고 있다. 종이에 나타나는 발의 간격이 16세기 후반의 지질이다. 또 활판인쇄의 특징인 계선과 광곽이 떨어져 있고 목활자를 사용하여 글자가 일정치 않으며 삐뚤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선조 10년 동시대 인물이 다수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




조선조 민간인쇄 조보와 관련된 논집을 발간한 김영주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사진 우)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인사사항 그런 내용은 신문의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만약 진위가 확인이 된다면 세계최초 민간이 발행한 상업일간신문이다. 이는 국보급이다”고 했다. 

 
정걸진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사진 중앙)는 “서지학자 언론학자 국문학자들이 모여 좀 더 연구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면서 “세계 언론사에 중요한 일이다. 한국이 인쇄 왕국이 된다. 영광스런 나라가 된다.”고 했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지봉스님(은해사 부주지·사진 좌)은 “20년 넘게 서책을 만져왔는데 이번만큼 흥분되기는 처음이다. 관련 학자들에게 설명했더니 모두 축하한다며 진위여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면서 “세계사적 발견이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인쇄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세계최초라는 명성을 찾아오고 이것이 영천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천에는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화사 지봉스님과  김영주 영남대, 정걸진 경북대교수가 조보를 살펴보고 있다



- 조보란?
조선시대 조보(朝報)제도는 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발행기관)에서 출납한 소식 가운데 중요한 것을 취사선택하여 산하기관인 조보소(기별청)로 하여금 매일 발표케 하면 각 관청의 기별 서리들이 필요한 기사만을 선별적으로 필사하고 양반관료에게 전달하는 뉴스전달제도였다. 관 주도 필사조보는 폐쇄성과 비인쇄성으로 불편하였고 이에 민간주도 전문업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선조 10년(1577년) 8월 서울에 사는 민간인 수명이 연서로 의정부와 사헌부에 조보의 인쇄판매사업의 허가를 받고 활자로 인쇄하여 각 관청과 서울주재 경저리에게 판매하였다. 3개월가량 발행한 11월경 우연히 이것을 본 선조가 그의 허락 없이 발행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폐간조치하고 조보발행활자 몰수, 관련자 30여명을 유배형에 처하였다.       문의 010 - 3500 - 1777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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