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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안면 반계리, 농사 보다 인근 공장 다니는 주민들 많아

영천시민신문기자 2013. 7. 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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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안면 반계리, 농사 보다 인근 공장에 다니는 주민들 많아

 


경주방향 국도로 달리다가 북안 임포방면으로 내려서 가다보면 아담한 북안 소방서가 나오고 그곳에서 임포역 방향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꺽어 들어서면 작은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만드는 임포역과 맞닥트린다.
300m정도 길이가 되는 역 앞의 좁다란 농로를 조심스레 가다보면 마을을 따라 길게 늘어선 철길건널목이 나온다. 바로 철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반계마을이다.


북안 방산(方山)의 산맥이 서북쪽으로 뻗어 있고 그 끝에는 구릉야산이 있으며 야산이 다시 뻗어 마을의 뒤로 이어진다. 서남쪽으로는  넓은 들이 있고 마을 앞을 흐르는 북안천(北安川)은 아름답기가 그림 같다. 자연마을로는 반계(磻溪), 추모재(追慕齋) 등이 있다. 반계는 지금부터 약 600여 년 전 고려시대에 개척했다고 추정되며 개척 당시에 넓은 들과 아름다운 주위환경, 깨끗한 시내가 있고 이곳에 있는 암석(巖石)이 매우 좋아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기에 반계(磻溪)라 칭했다.


이상우 이장은(55) “마을에 사람이 별로 없는데 소개가 잘 될지 모르겠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마을에 주민이 적어 한 마을이 모두 가족처럼 챙기면서 잘 지내는 것이 자랑일 수도 있겠지요?”라고 말했다.
마을전체 22가구에 주민의 수는 30여명, 벼농사와 포도재배, 그리고 돼지사육농가가 있지만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6~7가구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주민들은 인근의 공장이나 회사에 다니고 있다.

 

오고가다 주민들이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상석 노인회장은 “마을의 연중행사는 5월 경로잔치를 조촐하게 치르는 것뿐이지만 마을 회관이 없을 때는 차례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반상회나 동 회의를 열고 그 집 주인이 음식을 장만해 마치 동네잔치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자랑했다.
농토가 넓지만 주민이 적은 관계로 농사의 작목이 적을 수밖에 없고 마을토지는 정작 다른 지역사람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새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올해 5월부터 경로당을 짓기 시작해 원활히 진행 중이며 준공은 10월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반계마을에는 서너개의 공장이 들어서 있는데 생활용품이나 화장품원료제조공장, 국내 무기 필러 전문제조업체 등 다양한 공장들이고 명성산업, 덕천산업, 엠에스테크 등이 그 회사들이다.


마을진입로가 좁아서 불편하면서도 위험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 차가 옆으로 떨어져 견인차를 불러 끌어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내포, 원당, 자포 신촌 등의 마을에서 임포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계마을의 입구 진입로를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데 확장공사가 꼭 필요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포장공사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바람이다. 농수로 또한 옛날식 수로에 풀이 우거져 물이 막히는 일도 허다해 불편하지만 이 마을의 농수로는 농촌기반공사에 기록조차 되어있지 않아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어 면사무소에만 불편함을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 앞을 달리는 철길도 큰 소음거리였는데 2018년쯤에는 옮길 예정이라고 주민들은 알고 있다.


지금은 농촌을 떠나가는 실정이라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옛날에 번성하던 때가 있었고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여 고국충절을 발휘했던 김정 선생의 뜻을 이어 후학을 양성하던 반계서당이 있었다고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전하여 경주전투에서 순절한 소곡 김대해 선생의 아들인 김정 선생은 병자호란때 병사를 모집해 의병활동을 했는데 김정 선생의 재실인 추모재가 남아있는 충절의 마을이기도 하다. 출향인으로는 대구시청관리사업소의 이재원 씨가 있다.
박순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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