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 캐피탈 이윤희 대표, 금융회사 명성 자자 영천중고 출신
영혼 감동시켜야 금융인으로 성공, 정이 전달됐을때 가능
주)IBK캐피탈은 IBK금융그룹의 일원으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 및 서민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신전문금융회사이다. 이윤희 IBK캐피탈 대표이사는 영천시 동부동에서 태어나, 영천동부초등학교와 영천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2000년 속초지점장을 시작으로 서여의도지점장으로 영전한 뒤, 본점 개인고객부장, 부산울산지역본부장, 서울강동지역본부장을 거쳐 2010년 1월 부행장급인 본점 신탁연금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이윤희 대표
그리고 그해 11월 현재의 (주)IBK캐피탈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이윤희 IBK캐피탈 대표이사는 취임한지 1년만인 2011년 전년대비 금융자산 20%이상 증가, 35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역대 최대의 실적을 기록해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지인 속초지점장으로 부임한지 3년도 채 안되어 대한민국 금융1번지인 서여의도지점장으로 영전하고 그후 일관되게 영업부문에서 승승장구한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윤희 IBK캐피탈 대표이사는 금융가에서는 금융비지니스의 귀재로 명성이 자자한 전문금융인이다. 우리 고향 영천의 자랑스런 향우로서, 30년 금융인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금융계의 거목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윤희 IBK캐피탈 대표이사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고향에서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지요?
“영천중고등학교 근처인 야사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요. 4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건강하고 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어릴적에는 부모님이 이름을 모개라고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50년대 말쯤에 큰 형님이 대학생이었고, 집에 전축이 있어 저녁이면 동네 형들이 집에 모여들었던 기억이 나는걸 보면 집안형편은 그런대로 유복했던것 같습니다. 초여름 저녁, 백합향이 그윽한 넓은 마당가운데의 평상위에서 어머님이 홍두깨로 칼국수를 밀던 장면 등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신시장 쪽 강둑에까지 가득 찼던 금호강에서 여름이면 멱감고, 겨울이면 썰매타던 추억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대학졸업시 교수님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할 것을 적극 권유하셨지만, 기업은행에 합격통지서를 받고 은행원의 길을 택하게 되었지요. 결국 입행한 후 회사측의 배려로 주경야독으로 석사학위까지는 받았습니다. 그때 교수님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교수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은행원의 삶을 살아온게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제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기때문이지요.”
-사장님은 효자로 주변에 많이 알려져 있던데요.
“효자라고 말하는것은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다만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탓인지, 어머니의 지극했던 자식사랑의 기억을 유달리 오래 간직하면서 살았다는게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병중이시던 1년여 동안 막내인 제가 우기다시피 어머님을 모셨던게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좀 더 일찍 모시지 못했던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IBK캐피탈 대표이사로 오르기까지 가족들의 도움과 희생도 많았을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족들의 얘기도 좀 해주시지요?
“아내와 1남1녀의 가족이 있습니다. 속초에서의 초임지점장 시절에 온가족이 속초에 내려가 함께 지냈던 일이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미술 전공인 아내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미술전시회를 공동개최하는 등 주민들과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부임했을때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이었고 폐점대상일 정도로 영업실적도 저조한 오지의 지점이었지만, 속초뿐만 아니라 인근의 고성 양양 인제 양구 등의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체 그리고 군부대 심지어는 설악산 봉정암 등 사찰까지 밤낮으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단기간에 최우량지점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적극적인 내조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기에 지금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IBK캐피탈은 기업은행의 주력 계열사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회사소개를 부탁드립니다.
“IBK캐피탈은 국책은행인 중소기업은행의 자회사로서, 수익성뿐만 아니라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육성’ 및 ‘새로운 중소기업 창업 촉진’이라는 사명 아래 창업투자회사로 1986년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여신전문금융회사로 전환하여 펙토링, 기업금융, IB금융, 개인금융까지 취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업계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과 건전성 및 다양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지닌 중견 금융회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1년만에 금융자산 순증가 4000억, 당기순이익 순증가액 100억의 경영실적을 달성한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2011년에 금융자산 20% 증가와 역대 최대 순이익인 357억원을 달성했습니다. 저는 부임 첫해인 2011년을 창조경영과 전략적 소통의 원년으로 삼아, 새로운 조직문화와 성장을 위한 기반구축과 , 영업 및 리스크관리 강화에 회사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집중한것이 어느정도 결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신사옥이전과 홈페이지 개편, 차세대전산시스템개발로 성장을 위한 기반구축을 하고 중장기비젼수립과 전직원한마음축제, 사가, 영상물제작 등으로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였습니다. 또한 지역영업본부와 리스크관리부를 신설하여 영업기반과 역량을 최대한 강화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에는 전직원들과 함께 금융자산 3조원이상, 당기순이익 450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눔경영 실천 및 웰빙 근무환경 조성과 즐거운 일터 만들기운동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30년간을 은행원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끝에 금융회사 CEO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금융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고향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금융업이란 한마디로 서비스업입니다. 서비스정신, 즉 고객의 마음을 넘어 영혼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금융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감동이란 사람에 대한 정(情)이 진정으로 전달됐을때만 가능하다는것이 오랜 경험으로 결론내린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금융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은 기본적인 전제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을 대할때의 정(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만 견지한다면 누구나 금융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벽희 서울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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